#21 자산어보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가 아니다. 여느 때 같은 여유있는 평온한 토요일 아침은 아니다. 동생 개업 예배와 합창단 단원 자녀 결혼식 등 몇 가지 일정이 있다.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몇 사람을 만났는데 한 달동안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본 것도 아닌데 스스로 기분이 나빠졌다. 결혼식까지 갔는데 점심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손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릴없이 있다가 자산어보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라서 출연한 영화를 일부러 안보기도 하는데 뭐에 이끌렸는지 영화에 빠져들었고, 약전(설경구님)과 창대(변요한님)의 대화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창대와 약전이 함께 어보를 쓰기 위해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온 장면이다. 파도가 일렁이는 나룻배 위에서 오고가는 대사다.
창대가 배 위에서 논어 중 한 귀절을 말한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이 막연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하면서 약전에게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말을 합니까?라는 말을 던진다.
정약전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말로 치자면 장자가 그 위고 부처 그보다 위다. 아니다. 또 있다'
'누가 내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 주거라'
천주의 아들인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데 용서를 이렇게 비유한 사람은 예수 이전엔 없었다.
일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고 높아지고자 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목숨까지 내어놓은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당대의 천재다. 여러 권의 책을 쓰고 그 학식과 덕망이 높아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들이 반한 이윺는 무엇인가? 바로 세상 사람들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 어떤 목사님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는 교회가 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라고 역사가 그렇게 증명한다고 이야기했다. 전염병이 돌때 기독교인들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돌보았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낮은 곳으로 가서 더 낮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회는 동성애에 빠져있다. 대한민국 교회에서 모든 죄악 중 가장 큰 죄악은 동성애다. 사람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정죄한다. 죄있는 자들이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뭐라한다. (나도 이글을 쓰면서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창대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오고 그것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부조리와 불합리한 세상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약전에게 돌아온다. 부조리와 불합리에 울분을 품는 것을 보면 창대가 공부한 것이 헛것은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안다는 것은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 많이 알아 걱정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더 알게되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교수들이 지 잘 났다고 떠드는 소릴하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행동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는가? 이유가 있다.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 사람을 향해있지않고 자신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영화 리뷰를 쓰다가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글 쓰는 것이 목적이니, 그저 쓴다. 생각하고 느끼고 쓴다. 그렇게 기록한다.